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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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관동의 밤>> 제1부(12)
2015년 02월 03일 11시 07분  조회:2295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2

 

 

 

  

 

    류자들은 맏두령을 비롯한 사량팔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지 좀이라도 거역해서는 안된다. 싸울때는 용감하고 앞에 서야함은 물론이거니와 겁을 집어먹거나 뒷걸음쳐서는 안된다. 대오가 모지에 이르러 주둔할시면 보초를 서는데 그 누구든 자기에게 임무가 떨어지면 사달없이 잘 완수해야지 조금이라도 잡짓이 있어서는 안된다. 년말이거나 묘동때면 누구나 다 자기가 노력을 들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한 응분의 보상을 받게 된다. 평시에 새자들은 그 누구던간에 쪽을 놓음이 없이 다가 만족스레 먹고 마시고 놀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녀자만은 두령들 처럼 맘대로 데리고 살지 못한다. 어느 큰 토비무리나 거의가 비슷한 상황이였지만 이 방면에 들어가서는 염왕산이 특히 더 엄격했다.

    염왕산은 지어 사량팔주들도 취처를 하지 않아 다가 독신들이였다. 그것은 위삼포탓이 아니라 그들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였다.

    예전부터 관동의 적잖은 토비무리들 중에서 새자가 불만이 생겨 두령과 맛서거나 지어 호상간에 참살하는 참극들이 자주발생하군했다. 그렇게 되는건 두말할것없이 두령인 자가 주먹이 드세지 못해 단합이 잘 안되고 내부가 혼란하기 때문이다. 겉이 아무리 보기좋와도 속이 병들면 모든게 잘못되기마련이다.

    염왕산은 여지껏 그런일이라곤 한번도 발생한적이 없다. 이는 이 류자집단이 어느만큼 응집력있고 견고한가를 말하고도 남음이있는 것이다. 이 한 집단이 여지껏 이토록 무사했으니 어찌 장하지 않으랴. 위삼포는 그로하여 그 누구보담도 자호를 느끼고 있었다.

    염왕산류자들은 한결같이 위삼포의 공덕을 노래했고 파량팔주를 찬양하면서 맏두령을 떠받들 듯이 그들을 떠받들었다. 숭배와 복종은 그같이 두령들께 충성을 다하리라 맹세한 모든 새자들의 미덕으로 취급되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맏두령과 사량팔주는 태평가를 부르지 않았거니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경각성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새자들께 인심잃는 일이거나 불만이 생길 수 있는 일은 극력피했다.

    360여명의 류자는 잘 단합되여 있었다.

    8월의 어느날. 남쪽산채에 있는 류자들이 가마마스러 갔다와서 《자유휴식의 날》을 맞는 덕에 매양 그러하듯 다른 류자들도 거기에 말려들어 온 산채가 또 한 번 명절기분에 잠기게 되였다. 이럴때는 여기저기 끼리끼리 모여서는 주먹치기재간을 비기거나 목마타기를 놀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질탕놀아대는 것이 습관마냥 굳어진 일과였다.

    어떻게 어떤모양으로 놀건 싸움만 하지 않으면되였다. 무릇 싸워서 사달피운 자에 한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이 내렸다.

   《홀아비나서면 그림자뿐이네.》

   《홀아비병나면 누가 국끓여주나.》

   《홀아비몸에 이밖에 없네.》

   《홀아비옷 해진건 누가 기워주나.》

   《홀아비 홀아비신세 알아준다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즐긴다네.》

    어떤 류자들은 즉흥에 잠겨 네 한구절 내 한구절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

   《수탉은 만나면 원쑤싸움.》

   《부부싸움은 닭싸움아닐세.》

   《아침에 물치며 싸운 부부》

   《밤이 되니 한베개베고 잔다네.》

    어떤 새자들은 맛붙어 징그럽게 그러는 동작을 피워대기까지 한다. 그러는 걸 보고 발정한 개모양으로 발동돼서 따라하기도 하고 우수워죽겠다고 미칠지경 박장대소하기도 하는 새자들.

   《이거 장난이 너무심하잖아.》

   《아니야. 지랄이 모자라는거야.》

    이러면서 진부한 허탈을 달랜다.

    오간수다리밑이 지저분하다더니 네 녀석들이 그 꼴이구나. 차라리 토비노릇 그만두고 모두들 제가끔 색시얻어 여기다 마을앉히고 살림살이나 하면 여북좋으랴. 벌목을 하던지 산골부대를 일쿠던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던지. 이따위노릇 안해먹고도 살아갈 방도야 쌔쿠버린게 아닌가. 까마귀를 백조되라는 민호의 생각이였다.

    어느날 왕견이 민호의 일에 흥미를 가지면서 건드렸다.

   《여보게 민호동생. 접때 향란아가씨 초청해 갔더랬지?》

   《건데 그건 왜 또…》

   《리해안돼서 그러지 뭐. 그렇게 간 사람 아무재미도 못보고왔다는게 그래 말이 되나. 사람이 어쩜 그리두 모자래. 나같으면 가만있지를 않겠어. 입에 들어오는 고기두 안먹다니 원. 아무리봐두 동생은 맹랑한 짓을 한거야.》

   《좋은 노래두 장들으면.... 왕형 그 말도 이젠 악비가 나오.》

   《듣기싫다는거냐. 너도 보재모양으루 그게 병신된게 아녀? 그러면 큰일인데. 묘동때 기생집은 다 갔지. 정말 쓰지두 못할거면 개나 떼줘. 어느 갈보년이 시들어버닌 가지를 만져나볼가.》

   《하하하하…》

    가까이에 있던 새자들이 그 말을 듣고 질펀한 웃음을 쏟았다.

    민호도 따라웃는 수밖에 없었다.

    하진국이 으레 말추렴에 빠지려하지 않았다.

   《세상에 제일좋구두 나쁜게 그놈의 구멍이요. 우리 여기서야 계집이 바로 화덩이였지. 왕형 안그렇소?》

   《건 무슨소리냐?》

    민호가 궁금해 물었다.

   《정형이야 아직모를 수 있지.》

   《뭔데? 너가 알려주지 않은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가. 그럼 내 알려주지. 이제는 그게 여러해되오.》

   《가만. 그러니까 여기서 언제 녀자땜에 사달생긴 일이라도 있었다는 말이냐?》

   《돌아가는게 과연 빠르구만. 바로 그 말이지. 본래는 향란아까씨한테 오래전부터 시중들고 말동무질하며 지내던 아춘이란 계집애가 하나 있었더랬소.》

   《그런데?》

   《고놈의 암캐가 글쎄 때가 되니 발정이 됐던지 꼬리젓는바람에 젠장…》  

   《여럿이 달려붙었다 그 말이냐?》

   《그렇소. 그것도 저그만치 다섯이나됐던거요. 남모르게 했더면 좋았을건데 시간이 가면서 저들간에 그만 쟁탈전이 벌어졌지 뭐요. 물론 가만히 하는거였지만…생각해보우. 그래 어떻게 됐겠소. 나중에는 칼놀음까지나는통에 그만… 다 잡혀나오고말았던거요.》

   《그래서?》

   《그래서 위두령은 산채를 요란시킨 <세차즈>라면서 다 잠재우고말았던거요.》

    세차즈란건 말성일으키는 불민한 자를 가리킨다. 여지껏 법밖에서 인간사회를 외면해 온 외딴 세상, 오로지 자기네의 제도만이 통하면서 활개치는 자유의 령지, 그래서 독립왕국이나답잖은 여기서 무슨일인들 없었으랴. 들을만한 소리였다. 민호는 쟁그러울지경 무척 알고푼 생각에 들떠갖고 재우쳐물었다.

   《계집은 어떻게 됐냐?》

   《생각해보우 어떻게 됐겠는가구. 그 계집이 그래 액운을 면할 수 있었겠소… 장본인이라구해서 벌이 더 혹독했던거요. 이게 다 네년의 그 불칙한 구멍때문이라면서… 어떻게 했는지 아오. 바지아래도리를 매놓구서는 그 안에다… 고양이를 집어넣었단말이요. 그러구는 회초리로 막 때렸지…고양이가 아파서 발광쳤소…생각해보오. 그러니까 모양이 어땠겠는가말이요. 그놈의 발톱에 아래도리가 싹 긁히고 뜯기워서…》  

   《아니 위두령이 그리두 잔인했단말이냐?》

   《아니요. 그건 위두령이 한짓이 아니였소. 그때 위두령은 출면안하구 어떻게 돼서 서은괴가 손을 썼는데… 그런 형벌은 그가 고안해낸거라는 소문이 돌더구만.》

   《서은괴라니 지금 이련 삼패서 패장질하는 그치말이냐?》

   《그렇소. 바로 그가말이요.》

   《지독한 녀석이로구나!》

    민호는 낯색을 흐리웠다.

    하진국은 또 전에 향란의 어머니를 시중들던 하녀 하나가 누구에겐가 강간당하고나서 자살해버린 일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위삼포는 아마 여생에 다시는 재취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자식혼인까지도 불허하는건가?》

   《아따 어쨌다구 자식까지 시집장갈 못가게 하겠소. 아들이 여직 성가못하구 딸이 출가못한거야 전적으루 그 본인들께 원인이 있는게지 뭐요. 듣자니 위용강은 색시를 일찍얻을것두 산채의 많은 형제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지금도 주저한다나. 그리구 향란이는 시집가자해두 눈에 드는 마땅한 자리없어 늙어간다누만.》

   《고아가씨는 하늘도령이 나타나 청혼하길 바라는건가, 젠장! 호박이 늙은건 먹기나좋다구 해. 아까운 꽃 싹 시들어간다.》

    왕견이 애석해서 한탄이다.

    한편 어찌보면 그건 불만한 자의 넋두리같기도 했다. 침이나 흘려야지 별수있는가. 늙어 다 시들어버려도 자기같은건 손한번 만져보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과년한 향란이가 그래 과연 하늘도령의 청혼을 기다릴가?

    민호는 여럿을 둘러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내가 볼라니 황보재가 지금도 거기루 다니는거같더라.》

    이 소리를 지나가던 팽덕이가 듣고서 낄낄 웃어댔다.

   《그자식이야 헛욕심이나 챙기지 뭐요. 고재 처가집댕긴단는 말 못들었소.》  

    왕은경도 비린내맡은 쉬파리모양으로 어느새 끼여든다. 

   《그래두 그 녀석은 운이 튼거야. 내같은 놈이야 젠장! 기운이 나두 어디 뱉아놓을데가 있어야지 젠장!…빨리 묘동이나 와야 한배짐 내깔리겠는데. 씹새같이…얘 진국이 너도 보련춘유곽 잘다녀봤지?…거게 있는 땅딸보계집 그맛 한가진 참 좋더라. 안그래?》

   팽덕이다 손바닥을 쫙 펴 그의 번들거리는 이마를 찰싹 때렸다.     《야 임마. 말장 맛 맛. 그래 넌 그 맛쟁이루만 빠져난거냐. 그렇게 환장할거면 계집뒷구멍에나 붙어다닐게지 여긴 왜 들어와 꺼들거리는거냐.》

  《저 녀석은 그 갈보년한테 영 반했다니까.》

  《환장할 자식! 이제가면 아예 영 빠져 나오지두못할거야.》

  《우 후후후!…》

   또 한바탕 터지는 질펀한 웃음소리.

   

   남을 원망말라, 제 운명은 제가 지고가는것이니.

   어느날. 저녁을 방금먹고났는데 서은괴패의 나어린 새자 장평이 민호를 가만히 불러 향란이가 주더라면서 해엽자 한통을 주고갔다.

   그 아가씨가? 속지를 뽑아보니 거기에는 아래와같은 녀인의 글이 간단히 적혀있었다.

 

        오늘밤 만나자요. 상론할 일이 있어서. 8시에 꼭.   

                                            향란   즉일

 

    향란이가 나하고 무슨 요긴하게 상론할 일이 있을가? 하필 밤에?…의문이 갈마들어 진정할 수 없었다. 민호는 자기를 점점  더 가까이하고 사근사근해지면서 각별히 친절스레 구는 녀인의 그 달라가는 태도에 대해서 다른각도에서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야하는가 가지 말아야하는가 주저되였다. 그러다가 가봐야 한다. 글까지 보내왔는데 가보지 않으면 그건 무례한 짓이다. 후에 만나서는 무어라 변명하겠는가. 자존심강한 녀인이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봐야한다. 못갈 리유가 없다, 청하는건데.

   날이 어두워졌다. 시간이 되자 민호는 그녀의 거실이 있는 별채쪽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민호가 노크하고 들어가니 향란이는 캉틀에 걸터앉아 포개놓은 한쪽다리를 흔들거리면서 달걀을 먹고 있었다. 실내에다는 람프를 켜놓았지만 심지를 돋구지 않아 밝지 않았다.

   민호는 묵묵히 그녀만 봤다.

   향란이는 입을 놀리다말고 어김없이 와주는 사나이를 눈빗질해보면서 일순간 면구스러운 내색을 드러내더니 입을 먼저 열어 응고된 침묵을 깨뜨렸다.

   《오시니 고마워요. 곤곤자(달걀) 하나 드릴까요.》

    녀인은 일어나 자리를 내며 접시에서 달걀 하나를 집어 깝지발쿠기 시작했다.

    이 계집이 달걀먹으라구 날 오라한거냐. 그럴리는 없겠는데…상론하자는게 대체 뭘가?…눈주어 보니 구들에 담요를 깔고 그 우에 덧펴놓은 호랑탄자우에는 그녀가 즐겨 부는 소소(韶簫)가 놓여있었다. 네가 이걸 불면서 날 기다렸던모양이지. 기다렸다는 그 스스로의 판정이 민호를 은근히 즐겁게 했다.

    향란이가 다 발쿤 달걀을 민호앞에 내밀었다.

   《난 생각없습니다. 오복자(배)부르게 저녁먹었으니까.》

    사나이가 받지 않자 향란이는 방그레 웃으면서 권하던 달걀을 접시에 도루놓았다. 그리고는 다가와 간격을 조금두고 캉틀에 걸터앉아 아미를 다소곳이 숙이였다. 따아서 곱게 틀어올린 봉긋한 머리에는 섭옥잠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말쑥하고 고운 손으로 제 손가락에 끼인 람보석 금지환을 만지였다. 다리를 포개지 않으니 앉음새가 방금전보다 퍽 단정해보이는데 연분홍의 주란사비단치마자락은 몸에 차근히 붙어 섹시한 그녀 하신의 곡선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더한건 물론 볼록한 젓가슴이였다.

    향기그윽한 방. 닫겨진 창문에는 연람색의 양단카텐이 드리웠다. 날아 다니는 파리 한 마리 볼 수 없이 조용한 심규(深閨)였다.      이러한 환경은 이상야릇한 기분만 돋우어 주고 있었다.

    민호가 갑갑함을 못이기겠다는 듯이 몸을 추스르자 향란이가 숙였던 고개를 번쩍치키였다.

   《왜 그래요. 돌아가시자구요?》

   《숨가쁘구만. 더운데 창문은 왜 꽁꽁....》

   《열지 말아요. 모기성화심해서 그래요.》

    향란이는 카텐을 열지 못하게 했다.

    거짓말이다. 다른날에는 왜 밤에 카텐만 치고 창문은 열었는가?…중앙산채는 풀 한포기 없는 모래깔린 널다란 공지복판에 자리잡고 앉아 지금도 모기가 그리끓지 않는다. 한데도 이같이 바람한점 들어못오게 단속함은 왜서인가?…남은 감각조차 모르는 뻐꾸기로 보는건가. 언녕 생각이 잡히는데가 있는지라 민호는 한때 온 산채를 소란스레 만든, 그 아춘이란 계집애와 유관되였던 불행스러운 참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자기의 사련(邪戀)이 말성을 일으킬것 같아 두려워했다. 

   《아가씨! 무슨일에 날 오라구했는지…》

   《우선 급해말고요.》

    향란이는 눈치무딘 사내가 야속한 듯 눈을 살짝 꼬고나서 입을 다시열고 물어왔다.

   《접때 내가 말을 너무 넘치게 해서 그러나요?》

   《아니요. 난 그 일을 잊은지두 오랩니다.》

   《잊었다구요? 거짓말! 그 일을 잊을 리가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난…우리 함께 몽두춘할까요.》

    이 계집이 대체 무슨일이냐. 날 술마시자고 청한건 아닐텐데. 민호는 대방을 이윽토록 여겨보다가 대꾸했다.

   《아니 난 생각없습니다.》

   《정녕 그렇다면 관두자요. 난 혼자서 한잔했어요.》

    그러고 보니 넌 입에서 나는 술내를 감추느라 달걀을 먹은거로구나. 그런것도 이 뻐구기는 몰랐지. 민호는 웃고말았다. 아닌게아니라 가끔 저돌적인 짓을 잘하군하는 이 왈패스러운 녀인은 약스우면서 사랑스럽기도 하고 재미나기도하는 존재였다. 하여 그는 내가 이런 기회에 이 녀인의 생활구석을 한 번 들춰보는게 어떨가 하는 엉뚱한 궁리가 문득 났다.

   《보아하니 향란아가씬 지냄이 퍼그나 재미스러울것같습니다.》      실은 그럴 수 없는 일이였다.

    향란이는 자기의 처지를 그같이 경솔히 평하고 있는 사나이가 야속한 듯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머리를 가로젓고는 생각밖으로 무람없는 탄식은 가볍게 뽑아냈다.

   《재미라는게 다 뭐얘요…생각해봐요…고침단금인데 재미가 있을리있나요. 즐거움이 있을리있나요. 행복이란건 더 운운할조차 없는거구요. 안그래요?》

    녀인은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다시열었다.

   《거기서도 들어서 알겠지만…이젠 나이 스믈여섯돼요. 열여섯이면 방년인데 난 거기다가 열살이나 더 넘겼거든요. 아름찬 일이지. 생각해봐요. 계집이 과년토록 시집안가고있으니 뒷공론인들 오죽하겠나요. 이거야 내 귀로 듣지 않아도 산천자연이 다 알게 되는거죠. 안그래요? 왜 웃어요…사실이 그러한들 뭐래요. 떠들겠거든 어디 실컷 떠들어보라죠. 난 이젠 꿈만해요.》

   그녀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는 남의 여론앞에 자신을 완전히 방치한 상태였다. 

   민호는 입을 열어 궁금하던 일을 물어봤다.

  《이거 외람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과연 리해되잖는군요. 그토록 과년하도록 향란아가씨는 왜 엽때 시집안가구있었습니까?》

  《그게 그리두 의문스럽던가요. 내 오랍좀봐요. 난 오랍일이 더 걱정돼요. 우리 위씨집안은 삼대를 내려오면서 독자인거얘요. 그런데두나 오랍은…올해 나이 벌써 스믈여덟아닌가요. 그런데두나 서두르는 기색은 안보이구…생각해 봐요. 오빠안가는데 아무렴 내가 먼저나덤비겠나요. 그럴수야없잖아요. 안 그래요?》

   완전히 리유서는 말이였다. 민호는 언젠가 후근마사앞에서 그들 오누이가 주고받던 말이 상기됐다.

  《위도령이야 일면파에 대상자가 있잖습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아나요?》

  《언젠가 위도령이 거기루 가는걸 내가 본것같아서…》

  《그래요. 일면파에 오랍이 봐둔 녀자 하나 있긴해요. 소춘매라구하는. 그런데 그녀가 지금 거기서…》

   향란이는 하려던 말을 중둥무이하면서 삼켜버렸다.

   민호는 궁금쯩이 한결 더해지는지라 재우쳐 물었다.

  《거기서 뭘합니까? 왜 말을 하려다맙니까?》

  《그녀는 거기서 기생질해요.》

  《오―그렇구만!》

   위용강이가 기생한테 반해있다니! 아이도 배지못할 그따위 돌계집을 안해로 맞아서야 후대를 어떻게 잇는단말인가. 꼴을 보니 위씨네 가문은 정말 대가 끊어지고말가부다. 민호는 의문만 더 짙어갔다.

   《위두령께서는 손군을 보자구하실건데 아들이 그런 녀자를 맞아들인다면 어쩔까요?》

   《부친께서는 그걸 관계치 않아요.》

   《원 무슨소린지?…》

    위삼포가 그런 사람이란말인가! 민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삼포는 과연 세상에 보기드믄 용한 아버지라해야 할 것이다!

    민호는 정말 리해되지 않는다하고나서 넌지시 근중을 떴다. 

   《허면 위두령이 향란아가씨가 대상얻는것도 상관않겠네요.》

   《그래요. 부친께선 제한테도 선택자유를 준거얘요. 네가 누가 맘에 들면 누굴 정해 시집가라구요.》

   《오, 그렇군!》

    민호는 속으로 한 번다시 탄사를 올리면서 생각했다. 그것이 정말이면 위씨네가 유교사상을 버린것이다. 이들이 후대를 잇구는 혼인대사를 중히 여기지 않고 자재로우니 세속을 벗어난 개화한 자유인이라 해야할 것이다.  

    향란이가 중단했던 말을 다시이었다.

   《툭 털어놓고 말하자요. 황보재가 오래전부터 날 좋와했어요. 그렇다는거야 거기서도 언녕 눈치챘을게 아닌가요. 그런데말이얘요…솔직히 말해 난 지금도 그일 내 남편으로 만들고푼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어요. 그건... 》

    민호는 량미간을 그러모았다. 이 아가씨가 나를 제 지기로 믿어주는건가 아니면.... 주저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티라곤 조금도 없이 제할 소리를 다 하고있다.

    그녀 스스로 화제를 이쪽에서 제일 궁금해 하고 캐고싶어하는 쪽으로 끌어가는지라 민호는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아니 건 왜섭니까? 용모좋지 구변좋지 건강하고 사나이답지... 듣자니 뽐창에도 능수라더군.》

   《사나이가 그거면 단가요 뭐. 난…》

    향란이는 혀끝까지 튀여나온 말을 다시 한 번 되삼켜버리면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좀지나 되들어왔는데 그녀는 몸을 문설주에 지개면서 이쪽에서 모르게 문을 안으로 살짝 잠가버렸다.

    녀인은 집안이 물쿤다면서 웃동을 벗었다. 브래지어로 젓통만 가리운 하얀 상체가 불빛속에 홀랑드러났다.

   《아니 이년이!》

    은연중 저도모르게 조선말을 이렇게 내쳤는데 상대가 그걸 앓아들은것만같아 민호는 찔끔 놀라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향란이는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이 서서히 그리고 대담히 다가들었다. 스스로 주동이 되어 공격을 들이대는 녀인의 얼굴은 흥분으로하여 딸기모양으로 상기되였고 정욕이 끓번지고 있는 두 눈은 황황 불타고 있었다.

    민호는 뒤주춤했다. 내가 이거 나무가리우에서 불화로를 안았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기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이였을 뿐 그는 박근하는 상대를 더 피할 념을 하지 않고 그저 난색을 지은채 주저했다.

   《이거 이러다 보재가 들어오면…》

   《시름놔요. 보재가 없어요.》

   《그래두…》

   《그인 소용없는 걸레짝인걸요. 뚫어진 구멍에도 밖지 못하는 그까짓 변자(좃)를 뭣에 쓰겠어요… 난 고통스러워요.》

    육체상의 욕구와 기대가 접질러 불만이 야기되였던 녀인은 쓴웃음을 짓더니 주저없이 원망을 토해놓는 것이였다.

    고통스럽다고 까지 하소하니 속은 다 털어놓은게 아닌가. 그녀의 농도짙은 음성은 절절한 애원에 떨리고 있었다. 다들 뒤에서 쉬쉬대며 웃더니 그럴만도했다. 황보재가 과연 쓰지도 못하는 연장을 달고있는 부실이였음이 분명했다. 빛좋은 개살구였다. 진정한 남자를 알구퍼 하는 녀인이 남자구실도 못하는 그런 사나이를 그냥 나꾸기는 만무한 일. 이러한 사정으로하여 민호는 자기가 어느덧 육정(肉情)의 대상으로 포로되였음을 절실히 감득하게 되였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본능에 의한 욕구요 불가피한 행위거늘 어찌 비도덕적인 것으로 몰아버릴 수 있는가. 그래서는 아니될 것이였다. 녀인은 기대감을 갖고 대방의 반응을 잡아보려했다. 두눈은 열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녀인의 섹시한 체취가 페부를 찔렀다.     오롯한 침묵속에서 흡인력있는 두 이성간에는 잠재된 감정이 서서히 교류되기시작했다. 자기로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던 일순간이 지난 후 민호는 모든 우려들이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여지껏 억제되였던 욕구가 아래의 거기로부터 줄기차게 뻗어오르기 시작함을 감각했다.

    여기까지 이르러 더 참는다는건 어렵고 고통스러운 짓이였다.

    민호는 두눈을 슴벅거리다 웃음을 흘리였다.

   《그래서 날보구 풀어달라는건가요.》

    자기의 생각이 대방에 감통(感通)되였음이 확인되자 녀인은 서슴없이 팔을 벌려 그의 목을 감았다.

    광풍이 한바탕 광야를 휩슬어놓는것만같았다.

    교교한 여름밤의 대기는 맑았다.

    민호는 그 작업을 끝내자 오래누워있지 않고 거기를 나와버렸다. 묵직하던 몸은 거뿐했고 기분은 그지없이 상쾌했다.

    

    이튿날오전이다.

   《뒷마당에서 진수이샹이 한 번 만나자해요.》

    장평이 찾아와 민호에게 전달하고나서 제꺽 사라져버렸다.

   《뭐라, 진사해가 날 만나보잔다구!?》

    저으니 놀랜 민호는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그 원쑤놈이 대체 무슨일에 날 보자는걸가. 내가 제놈의 명줄을 노리고있다는걸 눈치채고 선손을 쓰느라 그러는거나아닌지.

    장평이 입밖에 번진 말을 제꺽잡아들은 한반의 류자들은 참을 수 없다면서 떠들었다.

   《진사해가 어쩌면 수이샹이냐?》

   《누가 그한테 그런 급을 줬게 그러나?》

   《그 사람을 수이샹이라 부르면 문제생긴다.》

    도리없는 말이 아니였다. 진사해는 자기 패의 류자를 거느리고 염왕산에 의탁하러 온것도 아니요 거지모양으로 알몸갖고 괘주한 사람인데, 제아무리 지위높았던 자라 해도 망해서 괘주했으면 그 한 신세는 언녕 일락천장이 되고만건데, 사실이 그러하거늘 이쪽에서 중용하기전에는 일반새자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건데.... 고험을 거쳐 사량팔주에 넣을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믄 것이다. 황차 진사해를 놓고보면 정말 변심하지 않고 눌러있을 사람인지 아니면 갈데올데 없으니 잠시 몸을 붙이자고 들어 온 사람인지 그 진가를 아직도 딱히 모르는판인데 그를 두령같이 떠받들다니 어디 말이 되기나한가.

   그를 두령으로 치는 새자는 주의와 견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 민호형하구 척지고 그러잖아.》

  《너 조심해라.》

   하진국이도 왕견이도 그가 만나자는게 이상스러운지 주의줬다.

   민호는 어쨌든 가서 만나기로했다. 가지 않으면 겁쟁이로 볼것이다. 진사해가 설사 이쪽이 누구란걸 똑똑히 안다해도 감히 손쓰지는 못할것이다. 그 어떠한 사극(私隙)으로든 그로인해 혈투가 벌어진다면 량자 다가 좋은 결과가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있을테니.

   중앙산채의 뒷마당에서 과연 진사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호가 나타나자 체구가 크고 강장한 그가 오만한 태도로 이쪽을 마주보는데 입가에서는 음습한 미소가 피여나고 있었다.

   민호는 험상한 게뚜더기상면을 대하자 그자를 이 자리에서 당장 작살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니는거요 자신은 험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직감했다.

   민호는 대방의 눈을 쌀쌀히 직시시하고나서 입을 열어 물었다.

  《무슨일이요?…날 왜 찾았소?…》

  《한가지 알릴일이 있어서.》

   진사해는 건 가래를 떼고나서 어성을 한결 돋구었다.

  《이 어른은 절대 구석놀음노는 량반아니야.》

  《잡담제하구. 대체 무슨일이요?》

  《간밤에말이야. 내가 위아가씨의 거실을 지나다가 희한한 일 하날 발견했네.》

   개자식이 그건 어떻게 알구서 이러는거냐. 인제보니 네놈이 그일을 꼬리잡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자는 수작이구나. 민호는 그를 아느새 쏘아보다가 내뱉었다.

  《비렬하게 노는군. 남의 뒷조사나 댕기구있어.》

  《흘레를 하더군.》

  《아직두 말을 못배웠어. 그건 너같은 짐승이 하는걸 보구 말하는거다.》

   진사해는 낯이 붉어지더니 눈알을 곤두세웠다.

  《이자식아, 도적짓하구서두 이래?》

   민호가 도도히 맛섯다.

  《그런일은 그렇게 하는거야. 무슨 짐승이라구 남앞에 내놓구 표연하겠는가.》

  《허, 자식이 입이 굳다.》

  《키꼴값하겠거든 좀 똑똑히 놀아라.》

   민호는 역겹다고 땅에다 침을 탁 뱉어놓고 돌아섰다.

   지모가 있다는 진사해가 그만 실패하고말았다. 장평한테서 민호와 향란지간의 은사를 알게 되여 그것을 까밝혀놓으면 민호가 련적으로 되고마는 황보재를 무서워 주눅들줄을 알았는데 적수가 숙어지지 않았다. 결국 대방을 서뿔리 건드리고만것이다.

    한편 민호는 도적이 매를 든다고 먼저나서서 자기의 꼬리를 잡는 이 비렬한 인간은 절대 순(順)으로 풀 원쑤가 아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원쑤를 눈앞에 놓고도 어쩔수 없으니 결장터질 일이였다. 진사해야, 진사해야, 네놈이 내 안해는 어쨌느냐? 네놈을 없애치우자고, 원쑤를 값자고, 내가 이놈의 데에 남은건데…아아, 언제면 그 일이 성사될가?…

    군자는 원쑤를 값는데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고 했더라 때가 오기를 더 기다리는 수밖에.

    

    토비들의 주요한 활동이라는 것이 가마를 마스고 인질을 잡아오고 인질을 바꾸고 같은 류자끼리 의리를 지켜 도와주고 보복을 하며 묘동을 보내고 눈에 드는 작은 무리는 삼켜버리거나 합작을 하는데 그런것들이 다 순리롭게 되어가는건아니였다. 쟁반밟는 일 즉 정찰하는 것이 잘 안되여 작전이 실패하거나 관병들 손에 녹아날수도있으며 다른 패거리와 충돌이 발생해 피를 흘릴 때도 가끔있다. 이럴때면 왕왕 한 류자무리의 운명을 결정짓군하는 것이다.

    략탈자의 락이란 곧바로 략탈이였다.

    요즘 또 가마마스러 나갔던 한패의 류자들이 돌아왔다. 이번 매매는 순리로왔다니 계획한 일이 성공했다는 소리다.

   백두옹 량태의 장악하에 산채의 후근에서는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잡았다. 환락에 잠긴 산채는 또다시 명절기분이 되었다.     류자들의 자작한 노래가 산간에 울리였다.

 

                       류자되면 즐거웁네

                            말타고 가마마스면

                            술생기고 계집도 생기네

                            선인악인 따로있느냐

                            희비애환 마찬가질세

                            말가는데 소도 가듯이

                            인생길은 한가지일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질 술상이 벌어졌다. 집안에서도 집바깥에서도 군데군데 모여 앉았다. 술이 좀 얼근해지자 벌써부터 여기서도 저기서도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게사니가 제 청을 자랑하고 시위나 하듯이 목주래를 곤두세워가며 권주령(勸酒令)을 불러댔다. 그래서 대방을 곤죽되게 만들면 그것이 승리였고 즐거움이였으며 기쁨이기도했다.

    민호가 있는 동남쪽의 산채도 다른 산채들 모양으로 조용하지 않았다. 류자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첫째는 배짱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형제간에 좀스럽지 말고 너그러워야 하며 셋째는 손이 독해야 하고 넷째는 색에 미치지 말아야 하며 다섯째는 술마실줄을 알아야 한다. 민호는 아직 손이 독하지 못할 뿐 그외의 네가지는 기본상 표준에 도달한 셈이였다.

    온 산채가 더운날 비온후 논판에서 악마구리끓듯했다.

    민호가 자기는 술먹이기시합에서도 왕이라고 꽝포를 놓고있는 왕견과 마주앉았다. 그가 그와 한창 술먹일 내기를 하고있는데 능구렁이 담장넘어오듯 황보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상판이 벌개진걸 보니 술이 웬간히 잘된 꼴이다. 그의 손가락에는 전보다 금가락지 하나 더 끼여져 반짝거렸다. 바다는 메울수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못메운다더니 속담그른데 없다. 그게 아마도 이같은 작자를 놓고 하는 말인가싶었다. 보재(寶才)라는 이름만봐도 벌써 남과는 달랐다. 절대 적빈여세(赤貧如洗)할 팔자는 아닌가보다. 어려서부터 제 부모한테서 장차 크거들랑 꼭 부자되라는 그 하나의 교육만을 궂이 받아 재보라면 걸신들린 돼지같이 탐욕을 부려왔을거다. 그러한 그가 이번 출전에 공을 세웠다고 한다. 부호를 들이치고 수색했지만 손에 넣을것이 적은 것 같으니 바로 이 황보재가 손을 폈다는거다. 그는 주인의 애첩을 붇잡아 우선 발가벗겨놓았단다. 그래놓고는 칼을 음도에 대고 찌르겠다고 위협해서 끝내는 깊숙히 감쳐둔 보물들을 알려주게 했다는가… 그가 염왕산의 악사(惡事)를 또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한데 이 자식은 왜 왔느냐. 민호는 속이 섬찍해남을 어쩌는 수 없었다. 이 자식이 나와 걸고들려구왔구나. 아마 진사해녀석이 추겼을테지…그가 온 리유를 눈치채지 못할 민호가 아니였다. 자칫하면 벌어질 수 있는 혈투를 피면키위해 웬만해서는 먼저 감정을 내지 않으리라고 그는 마음먹었다.

   《여보게 고려사람, 나두 한축끼는게 어때.》

    황보재는 악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지어 낯에다 웃음까지 바르면서는 제법 소탈한양 말을 걸어왔다.

   《난 자넬 꼬리방즈라구 안놀렸어. 그러니까 나까지 밉게 볼거야 없잖아… 그리구 사실은 우린 다가 한형제간인데 의기상투해야지 안그래. 같이놀아보자구. 오늘은 유달리 즐거운날인데…다른 의미는 없어. 나하구 한 번 통쾌하게 몽두춘해보자는 것 뿐이야.》

    웃는 낯에 침뱉겠는가. 민호는 그를 쫓아버릴수 없었다.

   《여! 민호동생 그만하지. 반강자를 아마 두사발두 더 마신거같은데…그리구 이 사람 보재! 자네두 그만마시는게 좋잖을가. 더 마시겠거든 다른 누구하구 마시든지.》

    그의 래의가 심상찮음을 눈치챘는지 왕견이 좋은 말로 물러가게하려했다.

    이쪽은 그따위 권고쯤은 개방구로 여겼다. 순순히 돌아갈 보재가 아니였다. 그는 어때 자신없는가 하면서 민호를 깔보았다.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 백산이 무너지나 동해수 메어지나! 젠장 어디해봐!》

    취중무천자(醉中無千子)라 술기운에 담이 커질대러 커진 민호는 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야 이자식아 네놈의 눈엔 내가 그리두 허깨비같아뵈이냐 하고 한마디 더 웨쳐대고나서 손짓으로 왕견을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다 보재를 앉혔다.

    황보재가 앉자마자 둘사이에는 겨룸이 곧 시작됐다.

 

                 당조일품경(當朝一品卿)》

                   《량퇴대화료(兩腿大花蓼)》

                   《삼성고조사계도오경(三星高照四季到五更)》

                   《륙합륙동춘(六合六同春)》

                   《칠교팔마구안도화료(七巧八馬九眼盜花蓼)》

                   《십전복록증(十全福綠增)》

                   《타개창호선(打開窓戶扇)》 

                   《명월조당공(明月照當空)》

 

    주령소리 사납게 높아가자 구경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사해의 추김을 받은 보재였다. 제 각시로 만들려는 아가씨를 감히 홀쳐내다니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는구나 하고 민호를 욕해온 보재였다. 그는 문득 나타난 련적을 이갈리도록 증오하다가 이 기회에 한 번 단단히 제독을 주자고 거는 판이였다. 워낙 술시합재간있고 벗바리가 좋은지라 신심이 컸던거다.

    쌍방은 몸을 솟구쳐 찍어박듯 하면서 게목을 찌르니 짜장 투계장에서 두 수탉이 결사전을 벌려놓고 피투성이로 되어가는 꼴이였다. 겨룸은 그토록 치렬했다. 둘다 비슷한 체대에 만만치 않았다.

    한데 시간을 끌수록 생각밖에 민호보다 보재가 점점 지는 차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장난꾼 몇이 에워싸고 그를 부레끓게 만들었다.

    보재는 점점 자제력을 잃기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벌주를  더 많이 마신 그가 꼭그라지고 말았다. 워낙 술을 민호보다 적지 않게 마셔서 취기가 있는데다가 넌 조선놈이야 아무렴 네깟녀석이 나를 당할소냐 하면서 얕잡아보고 접어들었다가 끝내는 남들이 벅작고우는 조롱속에서 어디론가 들려갔다.

    민호도 꼭그라지고 말았다. 다만 몇초간 더 벗텨냈을 뿐이지.

    지고야 분해서 어떻게 참을가. 악의적인 야심은 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것이다. 민호가 이같이 생각했더니 황보재는 이틑날 저녁켠에 술이 깨자 과연 다시찾아왔다.

    민호역시 그때까지 술기운이 가셔지지 않아 정신이 채 맑지 못하고 흐릿한 상태였다.

    그러한 그의 앞에서 보재는 악의품은 정중한 선언을 했다.

   《우리 한번 내기를 더하자!》

    민호는 자기앞에 다시나타나 집작거리는 대방을 덩둘하니 쳐다보면서 엉성하게 웃었다.

   《시합을 말인가?》

   《그래. 시합을 또 하잔말이다. 이번에는 좀 무사답게.》

   《어떤 시합을?》

   《뽐창던지기를 해보잔말이다.》

   《뽐창던지기를?》

   《그렇지. 듣자니 거기서두 그건 안다메. 웬간해서야 그런 소릴 안하는게지. 어때? 거리는 십보. 모두 다섯 개를 뿌리되 작대기를 세우듯 한일자로 쭉 내리긋잔말이야. 어때?》

   《그렇게 하잔말이지…》

   《그렇지. 그래서 누구든 다 그렇게만 하면 피장파장이 되니 평 으루 치구 내기를 그만두자구. 어때?》

   《그렇게 하잔말이지…》

   《그렇다. 시합해서 내가 지게되면 네가 내 귀를 한짝 베버리라. 그래서 날 병신으루 만들란말이다. 어때?》

   《내가 널 병신으루 만들라 그 말이지…》

   《그렇지. 병신으루 만들란말이야. 그리구…》

   《그리구 내가 지면?》

   《간단하지. 내가 너의 자지끝을 베놓겠어. 길게두말구 말랑말랑한 고 끄트머리만 살짝. 그거야 그래두 남눈에 띄이질 않는게 아닌가. 어때? 시합은 다음달 이날에. 그렇게 정하는게 어때?》

    이건 장난의 소리아니였다. 악의와 야심이 꽉 찬 그놈의 속창을 누가 모르랴. 랑아야심은 끝내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자기가 그처럼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증오해 오던 그것을 폐품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울분을 풀어보자는 황보재!

    민호는 이가 갈리였다. 뽐창이 생소한건 아니였다. 전에 의렬단에 있을때 테로를 목적해 권총사격과 비수다루기를 련습하고는 뽐창뿌리기도 부지런히 해서 기교를 일정하게 장악한 그였다. 하지만 시합에 나가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제 자신에도 재간이 시원치 못함이 알리는데 오늘 이런 피치못할 경우를 당할줄이야.

    제길할거, 뽐창뿌릴줄을 안다고 소문낼건 뭔가. 그런 자랑은 하등의 소용도 없는건데. 그토록 조심하노라했건만 쓸데없이 입을 놀린 자신이 민망했다. 어쩐다, 뽐창재간이 저자만은 못한게 뻔한데?…그렇다고 내 스스로 주눅잡혀 기를 꺾어버릴건가. 도전을 피하면 그때는 투항하고마는 것으로 되잖는가. 겨뤄도못보고 손들다니?…그것은 죽기만 못하게 자존심이 꺾이는 일이였다. 

   《할려면해봐!》

   《좋다!》

    황보재는 목적이 당장 이뤄지는것만 같은지 벌씬 웃으면서 대방의 어깨를 툭 쳤다.

   《아니 너 미치지 않았니!》

   《그치하구 뽐창시합을하다니 원!》

    왕견과 하진국은 이 일을 알자 십중팔구는 민호가 지고말것이요 그러면 틀림없이 잘못된다면서 펄쩍 뛰였다.

   《어쩌겠나 그럴 수밖에. 보복이 무서워 물러설수야 없잖은가.》

    이러면서 민호는 두 친구보고 소문이나 내지 말아달라했다.

    한달사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을 발딱차리고 련습해야했다. 반에 뽐창갖고있는 새자가 있어서 민호는 그들로부터 즉시 다섯 개를 빌릴 수 있었다. 그래서는 언젠가 포토우한테 사격검사를 받던 사격장으로 갔다. 거기에 오그라진 양푼을 걸어놨던 나무를 과녁물로 정해놓고 그는 련습에 달라붙는 수 밖에 없었다.

    운명을 거는것과 무엇이 다르단말인가.

    그야말로 불티나는 고역과도 같은 수련이였다.

    민호는 침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밤에도 강심먹고 달려들어 희미하게 보이는 나무를 향해 걸쌈스레 뽐창을 뿌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쩌는가. 보복의 칼날이 펀펀한 자신을 페인으로 만들어놓게 할수는 없잖은가.

    두 친구가 도와나섰다. 그러나 뽐창다루는데 들어가서는 그들의 재간도 그만 별로 나은 것이 못돼서 련습은 지지부진이였다.

    긴장은 신경을 오리오리 일으켜 세웠다. 공포가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떨어버릴 수 없는 조급증은 간장이 바질바질 타들게 만들었다.   

    바로 이런때에 향란이가 나타났다. 그녀는 민호가 여러날 보이지 않아서 찾다나니 여기로 온거다.

   《어머! 난 또 왜 안보이나했더니…》

    그녀는 여념없이 뽐창뿌리기에만 몰두하고있는 민호를 발견하고 경아했다.

    온 정신이 그 하나에만 빨려든 사나이는 녀인이 몸가까이에 이른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에 화딱지난 녀인은 불현간 목청을 세워 야멸스레 투정을 부렸다.

   《여봐요, 그놈의 뽐창에 갑작정붙었나요.》

   《아가씨구만! 여기룬 언제?…》

   《내가 언제온줄도 모르니 정말 인사불성이네요.》

   《내가 인사불성이라? 하하하…》

   《웃으면 단가요. 날 좀 동무해줘요. 서산골에 가보자요.》

   《아가씨 미안합니다. 난 그럴 겨를이 없어서.... 정말입니다.》

   《뭐라구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자기를 매몰차게 저버린것같아 향란이는 눈살이 곧아졌다.

    마침 이때 진국이와 왕견이 와있었다. 그들은 녀인이 독이 나 풀풀거리는 모양을 보고 하하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민호가 보재와 뽐창시합을 하게 된 연유를 알려주었다.

    향란이는 그 소리를 듣고나서 저으기놀래여 낯색까지 질리더니 보재를 욕했다.

   《비렬한  자식!》

    그녀가 뽐창뿌리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향란이는 쌍수도(雙手刀)와 쇠채찍(鐵鞭)을 다루는 외에 무림세가(武林世家)의 딸이였던 어머니한테서 전수받은 특기 하나가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뽐창(手槍)다루는것이였다. 보재의 뽐창재간은 바로 그녀가 배워준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재간을 비렬하게 이따위 앙갚음에 써먹다니 어디 될말인가.

    도저히 묵과해버릴 일이 아니였다.  

    

    광음여류라 어느덧 두 사람지간의 그 문명스럽지 못하고 악의적인 무서운 겨룸의 날이 돌아왔다. 그런데 조용히 하자던 겨룸이 보재가 들어있는 산채로부터 소문이 새여나온통에 그만 위두령과 사량팔주를 내놓고 염왕산의 류자 거의가 알게 되였다. 이것이 련적지간의 대결이라고 점찍은것도 물론이고.

    정해진 장소는 남산기슭이였다.

    량쪽 다 감적관이 나왔는데 저쪽은 서은괴고 이쪽은 왕견이였다. 그리고도 수백쌍의 눈이 감적(監的)하는판이다. 그들은 승패를 겨루는 당자들의 감정도착(感情倒錯)을 저마끔 근떠보면서 얼굴에 각양의 표정을 내발랐다. 짝짝궁이가 벌어졌다. 속이 간지러워 죽을지경이 된 어떤 새자들은 귀가 떨어지나 자지떨어지나 잘 보자면서 떠들기까지 했다.

    신심이 고무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보재의 얼굴에서 적수를 얕잡고 멸시하는 거만스러운 빛이 력력히 내비쳤다.

    흥분과 소란이 한데엉켜붙고있는 피의 대결장!

    누가 먼저뿌리고 누가 후에 뿌려야 하는가?  둘은 선후를 정하는 제비뽑기를 했다. 결과 민호가 먼저나서게되였다. 보재가 먼저뿌려야 좋겠는데, 그래야 그걸 보고 내가 자신의 단점을 다잡을건데 …민호는 긴장감에 가슴떨렸다. 방법없다. 이 역시 운명을 희롱하는 그 무엇의 작간인데야.

   《자, 시작해보지!》

    적수의 감적관 서은괴의 독촉이 떨어졌다.

    벌써 면밀히 짜고 들었는지 숨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민호는 숨을 크게 들이그어 자신을 진정시킨 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시각 팽팽해지는 긴장속에 수백쌍의 눈이 구령이라도 받은 것 첨럼 일제히 자기 한몸에 짐중되고있음을 전신으로 감각하면서 그는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가 정립했다. 그리고는 뽐창 다섯 개를 꺼내여 손에 거머쥐였다.

    이럴때 향란이가 유유히 나타났다. 그녀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여 민호가 용기와 신심을 북돋우게 했다.

    민호는 목표물을 똑바로 노리면서 정력을 집중했다가 돌발적  인《앗!》소리와 함께 과녁을 향해 힘껏 뿌렸다.

    그의 손바닥을 일제히 벗어난 뽐창들은 날파람소리를 쌩ㅡ내면서 날아가더니 일직선으로 나무에 쭉 내리박혔다. 뽐창과 뽐창사이의 간격도 똑 같게.

  《야!ㅡ》

   류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다음은 보재차례였다. 그역시 민호처럼 뽐창을 뿌렸다. 그런데 그가 뿌린 뽐창 다섯 개중 마지막하나가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나무에다 자리만 약간 남기고는 그만 아래로 잘랑 떨어지고말았다.

  《와!ㅡ》

   온 산채가 떠나갈 것 처럼 들썽하게 고함이 터졌고 신심포만헀던 보재의 밝고 거만하던 낯은 단통 흙빛이 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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